[대전 여행]
[대전 여행] 휴식과 체험 제대로 즐기자! 오늘부터 꿀잼 도시: 테미오래
Insomniac ・ 2024. 6. 10. 18:40
URL 복사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신고하기
사실 대전을 '여행지'로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어쩌면 이구동성으로 대전을 '노잼 도시'라고 칭해왔기에, 나 또한 절로 그렇게 생각해오고 있었는지도.
이에 따라 2014년 이후 나는 대전에 방문한 적이 없었고, 올해 초만 해도 [대전 여행] 글을 쓸지 꿈에도 몰랐던. 그러던 중 이번 여행이 시작될 수 있었던 건, 남들과 비슷하게 성심당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품으면서부터였다.
성심당 간 김에 당일치기로 산책 즐길 곳이나 찾아볼까 하다가 완성된 1박 2일 일정은, 엔간한 국내 여행지를 모두 다녀왔다고 자부했던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너무 괜찮았다. '대전, 제대로 칼을 갈고 있었구나!' 느낄 정도로.
조만간 성심당 갈 예정인 분들은 이제부터 시작될 글을 참고해 주시길. 오늘부터 꿀잼 도시, 대전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테니!
# 김화칼국수: 대전 여행 시작의 정석
서울에서 KTX 타고 50분. 최고의 접근성을 자랑하는 대전으로의 여행 시작. 진짜 타자마자 곧바로 내리는 느낌이었던.
화창한 날씨, 슬프게도 이와는 상반되던 우리의 몸 상태. 속을 편안히 해줄 음식이 절실했다.
이에 따라 우리가 선택한 곳은 김화칼국수. 대전역 지하상가를 지나며 꿈돌이를 만나니, 비로소 대전에 온 게 확 실감이 나는군.
본디 '대전 맛집'을 검색하면 항상 상위권에 나오는 곳이라, 줄을 설 것을 각오하고 방문한 김화칼국수. 다행히 기다림 없이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게 안이 생각보다 넓었던 덕분.
우리는 수육 小 자, 칼국수, 비빔국수를 고루 주문. 먼저 등장한 수육, 도톰하면서도 야들야들한 게 입에서 사르르 녹던. 온도도 따뜻한 게 삶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이러한 수육을 신선한 상추와 싸 먹으면 그 조화는 자타 공인 천생연분. 15조각에 10,000원이기까지 하니, 가격도 너무 착하다.
칼국수는 들깨가 듬뿍 들어갔으면서도 텁텁하지 않고 맑은 느낌을 유지하는 게 내 취향이었고, 비빔국수는 빨간 양념의 매콤 달콤함이 적절하였던.
개인적으로 역시 대표 음식인 칼국수가 가장 좋았지만, 칼국수와 비빔국수 둘 다 면발의 탱글탱글하고 쫄깃함이 장난 아니었기에 어떤 국수를 선택해도 전혀 후회는 없을 것. 칼국수 맛집답게, 면 품질 관리가 철저했던 느낌.
곁들임으로 나오는 양파까지 달달하고 맛있던 이곳. 여자친구와 함께 유튜버 선바 '비벼비벼 자장면' 명대사, "크-하하!"를 따라 하며 만족감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
# 안심동국당 아토: 몸보신 & 마음 보신 100%
본래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테미오래로 가는 게 일정이었으나, 우연히 진한 한약 향기에 홀려 들어갔다가 최고의 감동을 안겨준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한약 카페 안심동국당 아토.
알고 보니 김화칼국수가 있는 골목 이름이 대전 한의학 인쇄 골목이더라. 아래 사진처럼 수많은 한의원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딱 우리 취향이었던 골목.
카페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정갈한 분위기가 우리를 맞이해 주던. 일상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수석 (壽石)들 구경하는 재미, 그리고 온몸 구석구석 스며드는 건강한 향기 만끽하는 재미에 절로 빠져든다.
이런 곳을 처음 와보는 우리. 고민하던 우리에게 살갑게 말씀을 건네주시던, 친절하신 사장님의 추천에 따라 몸보신을 제대로 하기 위하여 각각 황제차와 황후차를 주문하였다.
이 외에도 요즘 갈증 해결에 제격인 생맥산 & 새삭쌈주스와 기력을 돋우는 녹용십전대보차도 잘 나간다고 하니 무얼 맛볼지 고민이 되신다면 망설임 없이 사장님께 여쭤보길 추천.
차를 주문했으니 한방차 한 잔만 나오겠거니 생각하던 우리. 그러나 실제로 쟁반 가득 차려져 나오는 한약재들을 보고 '헉' 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돈 9,000원에 새싹삼, 공진단, 호두와 인삼 정과, 따스하고 건강한 차까지 누릴 수 있는, 단순히 카페를 온 것이 아닌 제대로 치료를 받으러 온 느낌이었다.
사장님의 설명에 따라 새싹삼부터 맛보기. 역시 삼이라서 뿌리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이파리를 먹는 순간 입안이 향긋하면서 '화' 하고 상쾌해지는 게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던.
다음으로 공진단. 여태까지 아팠을 때 먹었던 공진단은 (물론 약이라서 그렇겠지만) 그다지 유쾌한 맛은 없었던. 안심동국당 아토의 공진단은 건강해지는 느낌을 주면서도 약재 고유의 달큼한 맛이 슬슬 배어 나와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었다.
호두와 인삼정과는 원래부터도 좋아하기에, 따뜻한 차와 함께 마음껏 즐겼다. 특히 호두 정과의 달달함이 적당하여 기회가 되면 한 봉지 사 먹고 싶을 정도였던.
황제차를 마시니 아침부터 좋지 않던 속이 싹 낫는 느낌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대전역에 내리자마자 근처 약국에서 양약을 사 먹었는데, 오히려 식감이 역겨워 토할 뻔했던. 이것이 바로 한의학의 위대함인가.
우리의 여행 파트너인 펭귄 친구들도 만족스러워하는 표정. 사장님께 '감사합니다' 인사드리고 카페를 나오니, 펭귄 친구들에게서도 진한 한약 향기가 나더라. 너희들도 제대로 몸보신했구나. :)
# 테미오래: 대전이 야심 차게 준비한 여행 종합 선물 세트
휴식 제대로 즐긴 안심동국당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이번 [대전 여행]에서 가장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던 테미오래로 출발. 대전역에서 311번 버스를 타고 10분만 가면 도착하는 최고의 접근성.
대전중학교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만날 수 있는 테미오래는, 우리나라 최초로 옛 고위 공무원 관사 단지 전체를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탄생시킨 곳이라고 한다. 충청남도지사 안희정 등이 실제로 2012년까지 거주했던 곳이라고.
테미오래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옛 지명인 '테미'와 이곳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는 소망 & 많은 분들이 방문하기를 바라는 '오래'가 합쳐져 탄생했다고 한다. 이름 진짜 잘 지은 듯.
① 1호 관사: 테미 체험관
테미오래 초입의 추천 관람 동선을 조금 바꾸어 여행 시작. 총 6곳의, 각기 다른 주제를 지닌 관사들을 둘러볼 예정이다.
충청남도지사 관사는 점심시간에 운영을 하지 않아, 1호 관사부터 둘러보기로. 1호 관사의 새로운 이름은 '테미 체험관'으로, 2024년 6월 현재 「감각의 정원」이라는 주제로 오감 (五感)을 고루 느낄 수 있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던 파릇파릇한 풍광. 그리고 창이 널찍널찍하여 따스한 채광을 자랑하던 관사들. 유튜버 선바 '비벼비벼 자장면' 명대사, "최-고!"가 절로 나오던 순간.
테미오래에서는 스탬프 투어를 진행한다. '결재 서류' 모양의 스탬프북에 각 관사의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완성. 예전 공무원 때가 생각나는구만. 항상 들고 다녔는데.
이 스탬프북만 있다면 나도 이 순간만큼은 5급 사무관 과장이 될 수 있다. 아주 지존이다. :)
미리 말하자면, 테미오래의 모든 관사들 중에서도 1호 관사가 가장 '살아보고 싶다'라고 느낄 정도로 제일 마음에 들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 체험까지 구성해 놓은 것도 좋았고.
테미오래의 장점은 재촉하지 않는다는 것. 방문객이 붐비지 않아 체험 공간을 오롯이, 머무르고픈 시간까지 쭉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 근래 우리가 선호하는,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여행지를 찾기가 힘들었는데 드디어 보물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더불어 테미오래의 관사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지어진 적산가옥이라, 가만히 앉아있자면 잠시 일본 여행을 온 듯한 이국적인 느낌에 젖어들 수 있는 것도 특징.
1호 관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시각' 공간. 스테인드글라스를 이용하여 빛의 변화에 따른 다채로운 색감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아마도 이곳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만난 확률이 높을 것 같은. 특히 복도를 따라 쭉 조성된, 일본식 모래 정원 옆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감이 가장 독특했던 것 같다.
다음으로 '촉각' 공간. 돌, 풀, 나무, 털, 찰흙 등 이 공간 내의 모든 전시물들을 만져볼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
테미오래는 마치 고향 집에 온 것처럼 앉을 곳이 참 많다. 덕분에 체험도 여유롭게 할 수 있었던 것. 방석에 앉아 펭귄 친구들의 부드러운 털을 촉감 놀이 삼아 쓰다듬으며, 쉬엄쉬엄 테미오래에서의 시간을 즐겨본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촉감은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알~~ 모양 조형물을 만졌을 때 느꼈던. 한참 쓰다듬었던 것 같다. :)
'후각' 공간과 '청각' 공간은 빈 백까지 있어, 좋은 향기와 맑은 소리를 즐기며 누울 수가 있다. 세상에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가 '눕기'이기에 감동할 수밖에 없던.
'후각' 공간의 산뜻하고도 은은한 향을 맡고, 그리고 '청각' 공간의 바람 소리, 새소리, 숲 소리, 발자국 소리 등을 들으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점의 티끌 없이 맑아지던 느낌.
어느새 우리는 전생에 빈 백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이 공간에 완전히 녹아들게 되었다.
'청각' 공간에서 건진, 이번 [대전 여행]에서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풍경. 현재 내 휴대전화 배경사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치 비밀스러운 숲에 들어온 듯, 전시 공간 곳곳에 심어놓은 생명의 기운들. 우리가 벌써부터 테미오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공간. 아무런 안내가 쓰여있지 않은, 1호 관사 후문 쪽 문을 살며시 열어보면 예전에 이곳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가마솥이 나온다. 세월의 향기가 느껴지는 정겨운 모습.
가마솥 뒤 창문으로 감상하는 나른한 대전의 오후. 그 어느 곳을 사진기에 담아도, 여기서는 모두 작품이 된다.
1호 관사 한 바퀴를 마친 후 방명록 쓰기. 2호 관사로 향하며 만난 길섶의 진달래도, 테미오래의 재미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이를 증명하듯 우리는 유튜버 선바 '비벼비벼 자장면' 명대사들을 ("단무지는 심지어 없나?", "헹궈~~", "송속.", "전분.", "오오오~~! 그렇군!") 신나게 따라 하며 흥 최대치를 찍고 있었다.
마치 악상이 떠올랐다는 듯이 무아지경에 휩싸여 명대사 따라 하기. 뜬금없지만, 이번 [대전 여행]을 빛내주신 선바님께 감사드립니다. :)
② 2호 관사: 테미 놀이터
2호 관사의 새로운 이름은 '테미 놀이터'.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근심 걱정 떨쳐버리고 신나게 놀 수 있는 공간이다. 생각보다 더욱 놀랄 정도로, 섭섭지 않게 놀이들이 준비되어 있을 것.
체험 순서는 전통놀이 → 근현대놀이 → 오락실 놀이 → 미래놀이 (VR 체험) 순.
우리는 오락실 놀이는 평소에 오'박'쿡드 게임을 많이 해왔던 이유, 미래놀이는 내가 VR 체험만 하면 멀미를 심하게 앓는 이유 등으로 전통놀이와 근현대놀이만 즐기게 되었다.
시대순으로 먼저 전통놀이부터. 초등학교 때 즐겨 했던 고누와 오목, 공기놀도 반가웠지만 우리는 딱지치기와 투호를 즐기기로 했다.
쉬는 날에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게 일상이 된 지금. 모처럼 몸을 움직여 놀 수 있는 게 매우 반갑던.
딱지는 어릴 때처럼 직접 접어서 칠 수 있도록 구성. 마음껏 접을 수 있도록 이면지를 넉넉히 구비해 놓았다.
야심 차게 접은 딱지, 그 결과는 여자친구의 완승. 90년 대생들은 성별간 하는 놀이가 서로 달랐던 편이라, 딱지는 한 번도 접어본 적 없다던 너. 사실 거짓말이지?
딱지 치는 영상 찍어주자마자 한 판에 내 딱지를 뒤집은 너. 잔인하구만. ;(
반면 투호 놀이는 나의 승. 살짝 킹 받지만, 찰졌던 나의 '던질까 말까' 춤 신공으로 3개 골인에 성공했다. 네가 찍어준 영상을 보니, 내가 봐도 약오를 거 같더라. 미안.
어떻게든 전통놀이를 즐기는 부실 감자들. 잼있는 인생…….
다음으로 근현대 놀이. 테미 놀이터에서 이곳이 가장 재밌고 알찼던. 놀이 종류가 가장 다양했고, '올해의 운세' 또한 점칠 수 있었기에.
칠교놀이, 땅따먹기, 보드 게임, 주사위놀이 등이 넉넉히 구비되어 있어 원하는 대로 꺼내서 즐기면 된다. 우리는 보드 게임과 '올해의 운세'까지만 체험하기로.
우선 펭귄 얼음깨기부터.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망치 닮은 친구로 얼음을 깨며 펭귄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지키는 게임. 나의 승리. 하하.
다음으로 통아저씨 게임. 놀라는 걸 좋아하지 않는 너는 칼을 꽂으며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긴장감에 엄청 무서워했던.
결국 꽂을 곳이 딱 하나 남은 순간. 게다가 너의 차례. "둑은!" 하며 마지막 칼을 겨우 넣은 너. 하지만 허무하게도 고장이 나서 통아저씨는 결국 끝까지 튀어나오지 않았다. 쩝…
'원효대사 해골물' 고사가 생각나던 순간. 모든 건 마음 먹기 달렸구나.
쩝… 상황을 뒤로 하고 '올해의 운세' 점치기. 두 개의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대로 운세 엽서를 뽑는 형식.
「무한도전」의 '육잡이' 아냐고 나에게 물어본 뒤 주사위를 던진 너. 와, 진짜 육잡이가 탄생했다! 영상 찍어주다가 엄청 놀랐던. 헐, 지존이다.
너의 운세 결과는 '마호체승: 새로운 도전으로 분위기를 바꿔보자.' 전보와 새로운 도전 등을 앞두고 있는 너에게, 이보다 더 시의적절할 수 없는 결과라 소름이었던.
나의 운세 결과는 '명철보신: 적절한 행동으로 내 자리를 온전히 유지하자.' 올해는 이미 이직에 성공했으니, 이제 지키라는 말인가. 그래, 조급해하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지켜야겠다는 생각.
테미오래 '올해의 운세', 참으로 신통방통하구나!
실컷 놀았으면 이제는 기념사진 남길 차례. 영수증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무료이다! 테미오래, 도대체 수입이 없는데 어떻게 운영되는 걸까.
사진 찍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소품들도 듬뿍. 나는 팝콘 선글라스, 너는 똑똑이 안경을 골라 기념사진을 남겨본다. 재밌다!
마지막으로 2호 관사 야외 정원에서는 보물찾기 대탐험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곳곳에 숨겨진 캡슐을 찾아 열어보면 당첨인지 꽝인지 알 수 있던.
나는 보물을 혼자서 10개는 찾은 것 같은데, 다 꽝
(단무지)이더라. ("심지어 당첨은 없나?" 또 '비벼비벼 자장면' 따라하기.)
반면 너는 2개 정도 찾았을 때 '당첨'을 발견했다. 사실 테미오래 주인아냐?
보물찾기 기념품은 몽땅연필. 기념품을 확인하자마자 서로 가져도 된다고 양보하는 게 진짜 웃겼다. :)
③ 5호 관사: 테미 메모리
대문 앞 느린 우체통이 인상적인, 5호 관사의 새로운 이름은 '테미 메모리'이다. 실제 이곳 관사 단지에서 사용하던 옛 물건들을 모아 전시해 놓은 공간. 나에게 1년 뒤에 도착하는 엽서 또한 보내볼 수 있다.
'시간이 머무르는 공간'이라는 5호 관사 초입의 문구답게, 고풍스러운 세월의 향기가 느껴지던 공간. '작은 박물관' 같았던 곳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테미 메모리'에서 시간 여행 하기. 우리 어릴 때보다 더 오래된 물건들도 있고, 아니면 우리 어릴 때 보았던 물건들도 있고. 90년대 생들은 '끼인 세대'가 맞는 듯하다.
다이얼 전화기와 필름 사진기, 빛바랜 책 등을 직접 만져보니 묘한 감정이 느껴지던. 슬슬 근현대사 박물관에 가면, 유리 진열장에 갇혀 눈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 물건들을 이곳 '테미 메모리'에서는 조심스레 만져볼 수 있다.
이제는 주판도 뭐하는 물건인지 모를 세대일 터. 나 초등학생 때는 주산도 방과후 학교로 배웠는데, 세월이 참 빠르다.
둘 모두 가장 정감이 가던 공간은 바로 부엌. 최근 우리 집 서랍에 잠자고 있던 비디오테이프 (VHS)들을 복원한 적이 있는데, 그때 보았던 우리 집 부엌과 정말 비슷하게 생겨서.
90년대에 다들 한 번 쯤 보았을 그릇, 수저, 컵 등이 신기하던.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도, 얼마 있지 않아 박물관에 전시되겠지. 그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낄지 참 궁금하다.
'테미 메모리'에서 마지막으로 엽서를 골라 나에게 쓰는 편지 보내기. 둘 다 약속이나 한듯 엽서 말미에 펭귄 친구 얼굴을 그리는 게 아주 귀여웠다. :)
우리 둘 다 공통적으로 쓴 글귀처럼, 1년 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던 간에 잘 해내고 있을 거라고 믿어보는 순간.
엽서 쓰던 파란 색연필 심이 사실 부러졌던 너. 느린 우체통 앞에서 나에게 색연필 심을 보여줬을 때, 내가 손을 '비벼 비벼' 하며 "없어졌어." 라고 한 게 정말 웃겼다고. 나 진짜 쓰-레기 같은 걸?
④ 6호 관사: 테미 갤러리
6호 관사의 새 이름은 '테미 갤러리'. 대전 지역 작가 분들의 소규모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다. 어쩌면 테미오래 조성 취지와 가장 잘 맞는 곳.
갤러리 입구에 보랏빛의 예쁜 담장 작품이 있기에 해맑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더니, 사실은 이 공간의 아픈 역사를 그린 「멍」이라는 작품이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떠오르던 순간. 다시는 테미오래가 일제강점기와 독재 정권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를 기원하며.
현재 '테미 갤러리'는 공예품 전시 중. 한복과 꼬까신 미니어쳐, 그리고 천을 바느질로 기워서 만든 그림까지 아기자기한 맛이 깃들어 있는 작품들이었다.
우리가 대전에 방문한 6월 6일 현충일이 전시 첫 날이시던데,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대전 시민 분들의 사랑을 받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
역설적이게도 네가 '테미 갤러리'에서 가장 좋았다고 느낀 순간은 오래된 다락에서 풍겨오는 쿰쿰한 세월의 냄새를 맡았을 때.
처음으로 방문한 이곳에서 익숙한 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으로, 대전은 우리에게 정감 가는 여행지로 거듭나고 있었다.
⑤ 충청남도지사 공관: 상설 전시
드디어 테미오래에서 만나는 마지막 관사, 충청남도지사 공관이다. 이곳이야말로 테미오래의 수많은 관사 중 옛 모습을 가장 그대로 간직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지어져 6·25 전쟁 때는 5일 동안 이승만 대통령의 임시 공관으로 사용되었고, 휴전 후 안희정 전 도지사를 비롯한 역대 충청남도지사의 공관으로 사용되었던 이곳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공간의 중요성을 보여주듯, 충청남도지사 공관은 테미오래의 수많은 관사들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였다. 드넓은 정원부터 여러 회의 공간과 집무 공간까지.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경교장'이 생각나던.
한 바퀴 둘러본 후 남긴 너의 표현처럼, 이곳은 규모와 구조상 편히 쉴 수 있는 느낌보다는 '집에 와서도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보였던.
솔직히 말하건대, 때문에 타 관사들과는 달리 멋은 있었으나 정감은 잘 가지 않는 충청남도지사 공관이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테미오래'를 검색하면 꼭 나오는, 차를 즐기는 공간 (일본어로 '차노마'라고 한다.) 에서 인생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꼭 충청남도지사 공관도 둘러보아야 한다.
아래 사진들처럼, 시원스런 풍광 아래에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휴일 티 타임을 즐기는 감성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우리 또한 펭귄 친구들이랑 가슴 설레는 사진을 많이 남길 수 있던. 무더운 날씨, 함께 여행을 와줘서 고마워.
그 외에 화장실 한 개 크기 정도 되는 곳이 목욕탕이었다는 공간과, 널찍한 부엌 2개를 보며 "집에서 술래잡기해도 되겠다." 농담 주고받기. 고위 공무원들은 이런 곳에서 지내는구나.
2층까지 모두 둘러본 후 충청남도지사 공관 나서기. 2012년에 충청남도 홍성으로 옮긴 도지사 공관은 지금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지던 순간이기도 했다.
여기까지 테미오래 스탬프 투어 끝. 스탬프북에 질서정연하게 찍힌 도장들을 보고 뿌듯함을 느끼며, 이제는 테미오래 나들이를 마무리할 7호 관사 '테미 살롱'으로 향한다.
충청남도지사 방명록 공간에 붙어있던 '꿀잼 도시 대전' 글귀가 적힌 꿈돌이 그림. 우리 또한 적극 찬성입니다!
⑦ 7호 관사: 테미 살롱
테미오래 여행은 7호 관사 '테미 살롱'에서 커피를 즐기며 갈무리를 해줘야 진정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스탬프투어 기념품도 받을 수 있으니 힘들더라도 꼭 들르기를!
테미오래 자체가 입장료 무료이지만, 커피까지도 무료이다! 서울에 찾아보면 한 푼도 안 들이고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도저히 나는 떠오르지 않는다.
왠지 연남동이나 합정동에서 많이 본 것 같은 '테미 살롱'의 외관. 그러나 만족감은 차원이 다르게 높을 것.
'테미 살롱' 마당 앞 귀여운 '콩알' 캐릭터들과 기념사진 남기고, 카페 안으로 입장. 대전엔 귀여운 친구들도 곳곳에 많아서 좋은.
와, 여기는 진짜 "최-고!"라는 표현을 연발할 수밖에 없다. 다락방과 루프탑 등 포근한 자리가 차고도 넘쳤지만, 무엇보다 침대가 있었기 때문!
앞서 언급했듯, 세상에서 '눕기' 놀이를 가장 좋아하는 우리는 "와, 미쳤다." 하면서 곧바로 누워서 휴식을 즐겼다.
풀썩 침대에 누운 너. 힘이 빠진 여자친구의 눈빛, 그리고 쿠션 아래 하얀 다리를 보고 나는 '강령술' 하는 것 같다는 역대급 드립을 저지르고 말았다.
덕분에 오랜 시간 동안 웃음을 참지 못하던 너였다. 내가 생각해도 참 기발한 드립이었다. :)
'테미 살롱'의 커피는 무료로 제공되는 유리잔에 자판기를 눌러 뽑아 마시면 된다. 커피 값은 유리잔을 스스로 설거지하는 것밖에 없는. 실로 믿을 수 없는 사실.
개인적으로 카페 마키아토가 가장 맛있어서 3잔까지 즐기고 만 나. 태아 닮은 예쁜 구름 흘러가는 모습 감상하며,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꿀… 같은 휴식을 즐기는 우리.
나쁜 생각으로 테미오래가 더이상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뜻치 않게 찾은 '행운' 같은 이곳, 앞으로 절대 잃고 싶지 않아서.
딱 하나 아쉬운 게 에어컨이 '테미 살롱' 빼고는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만, 모든 '행복'을 무료로 누릴 수 있는데 그게 무슨 대수랴. 테미오래가 탄생할 수 있도록 해주신 대전의 모든 시민분들께 감사할 따름이었던, 완벽한 반나절의 시간이었다.
# 다음 여행지도 있습니다!
대전의 축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 글에서는 더욱 다양한 대전 여행지를 소개할 예정.
일단 테미오래를 오랜 시간 둘러보았으니, 잠시 펭귄 친구들과 휴식을 취했다가 글을 이어나갈 것이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다음 글도 알차고 유익한 내용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대전 여행] 먹는 재미 & 노는 재미 1등급!에서 계속됩니다.)
저작자 명시 필수- 영리적 사용 불가- 내용 변경 불가
댓글5 이 글에 댓글 단 블로거 열고 닫기
인쇄